칼집이 없었다.
소녀는 처음부터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. 칼집도 없이 맨바닥에 꽂혀 있는 검. 날이 삼백 년의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보다, 녹슨 칼집 하나 없다는 사실이 더 오래 마음에 걸렸다.
유적의 입구는 좁았다. 한때 왕궁의 정문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. 마을 사람들은 이 폐허를 '삼킨 곳'이라고 불렀다. 왕국이 무언가를 삼켰는지, 무언가가 왕국을 삼켰는지는 아무도 몰랐다. 소녀의 이름은 세린이었다. 열다섯이었고,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마을 어른들의 부탁도, 운명의 부름도 아니었다. 그냥, 할머니가 죽었기 때문이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