냉장고 위 선반에서 노트를 꺼낸 건 어머니가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.
정윤은 노트를 가슴에 안은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. 꺼내는 데 삼 년이 걸렸다. 손때가 묻은 표지는 한때 초록빛이었겠지만 지금은 빛이 다 가셔서 어떤 색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 무언가였다. 스프링이 녹슬어 몇 페이지는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.
부엌의 형광등이 깜빡였다.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저 형광등은 깜빡였고, 어머니는 늘 "갈아야지 갈아야지" 했지만 끝내 갈지 않았다. 정윤도 갈지 않았다. 지금은 그 깜빡임이 나쁘지 않았다. 무언가 살아 있는 것 같아서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