고속버스가 휴게소에 멈춰 섰을 때, 준혁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.
11월의 고속도로변은 볼 것이 없었다. 갈대밭이 바람에 쓸리고, 그 너머로 회색 하늘이 낮게 깔려 있었다. 준혁은 그 풍경을 보면서도 사실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. 눈동자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을 뿐, 머릿속은 이미 도착지에 가 있었다.
무릎 위 서류 봉투가 자꾸 신경 쓰였다. 봉투 안에는 현금 사백삼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. 삼 년 치 이자까지 합산한 금액이었다.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, 아버지가 이웃집 박씨 영감에게 빌린 돈이었다. 당시 준혁은 그 사실을 몰랐다. 아버지가 말하지 않았고, 아버지는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