나는 그날의 일을 처음부터 다시 말할 수 있다. 몇 번이고. 눈을 감아도 순서가 흐트러지지 않는다.
오후 두 시 십오 분, 나는 강남구 논현동 카페 '모레'에 앉아 있었다. 아메리카노를 두 잔 마셨다. 영수증이 있다. 카드 내역서에도 찍혀 있다. 나를 알아본 사람은 없었지만 카운터의 CCTV가 나를 찍었을 것이다.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고, 햇빛이 왼쪽 뺨을 따뜻하게 데웠다. 재킷 안쪽 주머니에는 새로 산 수첩이 있었다. 거기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.
오후 세 시 사십 분, 나는 인근 서점에 들렀다. 소설 한 권을 샀다.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. 아직 읽지 않았다. 그것도 카드로 계산했다.